42 멋진 신세계 자막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안정효 옮김, 소담출판사 저자 소개 올더스 헉슬리 저자는 1894년 영국의 서리 지방 고달밍에서 토머스 헉슬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이튼과 옥스퍼드의 밸리올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미래를 내다본 현대 고전을 남긴 저자는 명문 집안 출신의 영국 작가로서 유명한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의 손자이고, 생물학자이자 철학자, 교육자인 줄리언 소렐 헉슬리(Julian Sorell Huxley)의 동생이다. 소설가로서 더 알려지기는 했으나 수필, 전기, 희곡, 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미래 과학 문명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누구나 행복한 사회 저자가 그리는 미래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부모의 울타리를 가진 가정에서 태어나 양육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난자와 정자의 인위적 결합을 통해 다수의 쌍생아들이 태어나고 집단 양육 및 교육을 받게 된다. “콩깍지 기법은 성숙과정을 가속시켜 두 주일 내에 적어도 150개의 성숙한 난자를 어김없이 생산해냈다. 수정시키고 나서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거치면 모두가 2년 차로 나이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가 150명 무더기로 태어나 평균 거의 1만 1,000명의 형제자매가 생긴다.” 그 미래사회는 인간이 공장에서 제품처럼 ‘생산’되는 세계, 모든 행동과 생각, 죽음까지도 통제되는 세계이다. 사람들은 유전자의 우수성에 따라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신분으로 나뉘는 세계이다. 그 사회에서 인간은 물리-화학적으로만 평등하다. 설사 가장 낮은 엡실론이라는 신분을 가지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은 습성 훈련을 통해 감정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건반사 습성 훈련을 통해 자신들이 베타나 알파가 아니라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누구나 행복한 사회’ 가족과 일부일처제가 없는 사회 가족, 일부일처제, 낭만이 없어지는 사회다.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공유하는 구조이다. 아이들에게 가정이나 부모는 없다. 집단양육과 공동생활이 시설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음은 패니와 레니나라는 두 친구간의 대화이다. “하지만 이건 진지한 얘기인데요. 난 정말이지 레니나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한 남자하고만 계속해서 사귄다는 건 한심할 정도로 나쁜 태도예요. 마확 살이나 서른다섯 살이라면 그것도 별로 나쁘지 않겠지만요. 하지만 이 나이에 그러다니, 레니나! 그래요, 정말 그래서 안 돼요. 세상에 국장님이 알기라도 했다가는 굉장히 화를 내시겠어요.” 여기서 국장이란 이들이 머무는 공동시설의 최고 관리자이다. 그는 일부일처제, 낭만, 내 사랑, 내 아기라는 이전의 사회가 얼마나 비참했고 한심했는지를 주입한다. 이를 때면 우리가 사는 그들에게 과거의 세상은 일을 쉽게 처리하도록 용납하지도 않았고, 건전하고 행복한 덕망의 삶을 살아가도록 용납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들과 연인들, 금기들로 인해 그들은 복종하도록 훈련되지 않았고, 온갖 유혹과 고통스러운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온갖 질병들과 끝없이 홀로 시달려야 하는 고통 때문에, 불확실성과 가난때문에 그들은 억지로 강한 척해야만 했다. 하지만 미래 사회에서는 신 파블로프 습성 훈련과 최면학습을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한다. 이 세상을 받아들이도록 과거를 반대하는 운동과 박물관들의 폐쇄와 역사적인 기념물들의 폭파와 포드 기원 150년 이전에 출판된 모든 책들에 대한 탄압이 병행되었다. 안정의 추구와 중요성 그 국장이 미래의 공동시설, 혹은 사회에서 원하는 것은 안정이다.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인 안정이 없다면 어떤 문명 세계도 존재하지 못한다. 개인적인 안정이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사회의 안정도 존재하지 못 한다” 기계가 돌아가고, 돌아가고, 계속해서 영원히 돌아가야만 한다. 가만히 서 있으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10억의 인간이 지구의 표면에서 바글바글 끓었다. 바퀴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150년이 지나고 나자 인구는 20억이 되었다. 모든 바퀴들을 멈추어보라. 150주일이 지나면 1,000 곱하기, 1,000 곱하기, 1,000명의 남자들과 여자들이 굶어 죽어서 인구는 다시금 겨우 10억으로 줄어들 터였다. 바퀴들이 끊임없이 돌아가야 하지만 누가 돌보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 바퀴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이, 축에 달린 바퀴들만큼이나 변함없이 꿋꿋한 사람들이, 건전한 사람들이 순종하는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삶에서 안정을 찾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아기, 우리 어머니, 오직 나만의 소유, 하나뿐인 사랑을 외치고, 내가 저지른 죄, 내가 섬기는 무서운 하나님을 부르며 신음하고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고, 열병에 시달려 헛소리를 하고, 늙고 가난한 신세를 한탄한다면, 그런 자들이 어찌 바퀴를 보살필 능력이 있겠는가? 멋진 신세계에서 걱정이나 근심이 생기면 소마라 불리는 알약을 먹는데 5분 후에 근심의 나무에서는 원인의 뿌리와 결과의 열매들이 사라지고 현재의 꽃만이 장미처럼 피어난다. 또한 사람들은 노화를 겪지 않는다.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내분비 활동을 인공적으로 조절해서 젊은 단계와 평형을 유지한다. 마그네슘과 칼슘의 비율을 서른 살 때의 비율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했으며 젊은 피를 수혈해서 신진대사를 영원히 자극받는 상태로 유지한다. 헉슬리가 그려놓은 멋진 신세계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고민거리인 많은 사회문제들이 해결된 사회이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문제, 신세계에서는 언제든지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질병, 노화, 사망, 돌봄, 영양, 보호, 안전의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예방되거나 해결되었다. 일부일처제, 부모, 자녀양육, 가족이 없으니 이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과 고민이 없어졌다. 인간들은 모두 일하고, 모두 여가와 취미생활을 하며 큰 고통 없이 평등하게 살게 된다. 인간들이 가졌던 대부분의 희노애락이 통제되고 해결된다. 안보의 위협도, 전쟁도, 주기적인 경기침체와 불안도 없다. 남녀가 결혼하지 않으니 원하는 누구와도 자유롭게 성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구조와 생존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듯이 보이는 그 신세계는 진정한 자유가 없고 인간다움이 없는 곳이다. 노예 혹은 아기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슬픔과 회한, 연민과 의무감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인간성과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유토피아가 곧 파멸이라는 역설이 두드러지고,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몰락이라는 반비례 원칙을 제시한다. 그러나 미래사회가 현재의 사회에 비해 반드시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바람직하거나 혹은 부적절하거나 등의 이분법적인 판단이나 평가는 필수적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