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자막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 2015. 저자 소개 오찬호 서강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사회의 고정관념과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강의를 한다. 개인 블로그 오찬호 닷컴은 사회분야 우수 블로그로 선정된 바 있다. 3년 전 운 좋게 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서울 하늘 아래 아파트 전세에 사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지금도 지하철 종점에서 내려 아파트로 향해가는 15분의 발걸음이 흥분에 차 있을 때가 많단다. 20대 대학생들의 삶 등록금은 엄청난 액수로 뛰어올랐고, 주거공간이나 기초적인 생활비 마련도 엄청 버거워졌다. 하숙에서 자취로, 원룸에서 고시원 방으로, 4000-5000원 하는 밥값도 부담돼 포장마차에서 2000-3000원짜리 ‘컵밥’으로 이조차 여의치 않아 점심식사를 그냥 건너뛰는 이십대의 점심 결식률은 12.3%로 모든 세대 가운데 가장 높고(2012 기준), 이는 전체 평균(6.4%)의 2배에 달한다(p. 22). 취업문턱에서의 좌절은 더 비참하다. 전공 적성 따지고 학력 수준 맞춰가며 취업한다는 건 사치다. 그렇게 묻지마 지원을 했어도, 42.9%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 대졸자 비경제활동률이 2003년만 해도 26.7%였던 점에 비춰보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그 절박한 처지를 노린 사기꾼 기승 고리대 대출알성 이용, 대포폰 개설에 끌어들임, 수십 명씩 지하골방에 가두어 놓고 상품 만매교육을 시켰던 ‘거마 대학생’ 사건, 불법 다단계 판매업체에 발목 잡힌 대학생. 20대를 가리키는 시사상식 수준의 말 청년실신 : 대학졸업 후 실업자가 대거나 빌린 등록금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됨 홈퍼니(Home+Company) : 집에서 취업 원서 접수에 매진하고 있음 목찌 : 취업이 대학생들의 목을 죈다. 십오야 : 15세만 되면 앞이 캄캄 청년백전 : 청년백수 전성시대 삼일절 : 31세까지 취업 못하면 절망 알부자족 : 알바로 부족한 학자금 충당하는 이들 3포 세대 :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출산 그리고 희망 등을 가질 수 없다는 육무(六無)세대 20대를 위한 자기계발 현상 지금의 자기계발 현상에는 ‘이렇게 하라!’는 주문만 있지 그로 인해 ‘달라진 결과’가 없다. 언젠가부터 이 사회에선 죽기 살기로 고생해서 성공했다는 사례보다 죽을 만큼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경우를 찾는 게 더 쉬워졌다. 사람이 실패하는 데 있어서 ‘노력 부족’이라는 개인적 변수가 결정적이라면 왜 그런 부족 현상이 경제력 층위별로 정확하게 구별되어 나타나느냔 말이다. 집단의 ‘소득’과 개인의 ‘성공’이 비례하는 지표들이 수두룩하다. 구조의 쳇바퀴에 갇힌 이십대는 ‘자기계발을 못하고, 자신의 몸과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할 테고,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가랑비에 옷 젖듯 내면화하게 된다. 20대의 암울한 특징들이 우리가 ‘닥치고 자기계발’이라는 담론으로써 적극적으로, 선동적으로 격려하고 있는 요란한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임 시대의 피해자들,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의 광기’ 20대에게 자기계발이란 ‘성과를 얻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며, 그렇기에 여기엔 고통스러운 ‘자기희생’이 따른다. 내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외부가 만족할 수 있도록 하는 가운데 자아가 희생되는 까닭이다. 그 희생의 내용은 각종 자기통제다. 지금의 20대들의 ‘결’은 다층적이다. 누구는 촛불을 들며 ‘사회적 약자의 권리 쟁취’를 말하고 누구는 자신의 촛불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의미를 확대하는 데 분명하게 반대한다. 이십대를 공통의 특징으로 묶어내기 어렵다. 대학서열에 대한 20대의 강고한 편견 대학서열이 마치 신분제 사회의 견고한 위계처럼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20대들은 자기가 다니는 대학보다 수능 서열이 낮은 대학의 학생들을 바라볼 때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그 학교의 ‘이름’과 결부시킨다. 자기 학교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의 학생들이 재학 중 무엇을 한들, 또 해낸들 관심이 없다. 무엇을 해도 자신보다 아래다. 정확히는 아래에 ‘있어야’ 한다. 20대 대학생들에게 어떤 객관적 증거가 있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증거가 있든 없든 서열이 낮은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소속된 대학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의 학생들을 낮게 평가하려 한다. ‘낮은 위치’로 말미암아 피해는 당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업자득으로 규정된다. 당한 쪽도 당연한 듯 수긍. 자기실현적 예언의 위력 원인 1: IMF의 추억 직장에서 단칼에 내팽개쳐진 아버지, 혹은 그럴 수 있다는 공포감에 짓눌린 아버지를 어릴 때부터 봐압다. 이십대들은 그걸 보면서 ‘사회화’되었다. 사회는 이기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가치관을 강요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좋은 직장을 얻는 것’ 이외의 꿈들을 당연히 거세해야 했다. 원인2: 경영학과의 사회학 지금 대학들은 이십대들을 더 완벽한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만들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들은 경영학과 위주로 학제를 개편했다. 다른 학과를 구조 조정하여 경영학과의 정원을 늘렸다. 원인3: before/after의 덫 88만원 세대, 20대가 ‘무기력한 존재’로 구성되는 과정. 참담한 현실만이 강조되는 사회분위기에서 이십대들은 스스로도 본인들을 구조의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라고 이해한다. 자기계발에 중독되는 현대인들 변신 문화란 미디어가 끊임없이 자수성가의 성공이미지들을 ‘고난극복지’ 스타일로 재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자기계발에 빠지도록 유도. 현재의 희생을 통한 미래의 성공이 마치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서 추한 ‘Before’를 벗어나 화려한 ‘After’로 변신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자기계발서는 ‘무기력한(before) 현재를 ’화려하게‘(After) 변화시킬 매뉴얼을 제공한다. 거의 불가능한 기적을 연출한 주인공들이 ’내 경우를 보라‘면서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우리 사회의 가지계발 열풍은 개인의 절박한 상황을 방치하는 사회시스템 때문에 가능했다. 문제는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에 있다. 힐링 담론 힐링 담론: 사회는 구조적으로 개인의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는데, 그런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을 ‘멈추면’ 비로소 자신이 왜 부족한지를 알게 되고, 그러면 이 경쟁사회에 서 사랑받는 비법이 ‘비로소 보인다’고 말한다. ‘힐링’은 사회적 압박으로 인한 고통을 치유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걸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게끔 한다. 당연히 사회구조는 늘 그대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자기계발 권하는 사회, 그 자체를 치유하는 일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우리가 흔히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당 부분 ‘자기 것’이 아닌 요소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 능력과 의지는 그 사람 개인의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샌델이 말하듯 결코 그렇지 않다. 맏이로 태어나거나 좋은 집안에 태어나는 것은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의 학력은 아버지의 소득을 결정짓고, 그 소득은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 결정하고, 이는 자녀의 ‘꿈’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