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나의 한국 현대사(1959-2014, 55년의 기록) 자막
<나의 한국 현대사(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저자 소개 유시민 1959년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태어남. 고등학교 시절 출세라는 것을 하려고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간 이후 공부보다 정부와 싸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씀. 야학에서 같은 연배의 노동자들을 가르쳤고 학생회 임원을 맡았다가 감옥 구경을 하기도 함. 30대 중반에 독일로 유학을 가 경제학을 더 공부함. 40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 역임. 스스로를 “프티부르주아 계층의 대구, 경북 출신 지식 엘리트로서 젊은 나이에 이름을 알리고 출세를 했지만 결국 정치에 실패한 후 문필업으로 돌아온 자유주의자”로 규정함. 유시민 개인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현대사 이 책은 유시민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태어난 시점부터 개인사를 시작으로 민감한 현대사를 다루기 때문에 어떤 역사책보다 어렵거나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중세사나 더 멀리 떨어진 고대사와 다르게 현대사는 사건 하나하나, 사람 한명, 한명에 대한 판단과 평가에서 논쟁 및 갈등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저자는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엿보인다. 또한 독자들에게 역사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유시민이라는 1959년 학교 교사를 하셨던 부친의 6남매의 다섯 번째로 태어난 사람의 판단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민족의 정통성 상실한 신생국가 대한민국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 신천지. 하지만 자연이 진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는 권력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승만은 탁월한 수단을 발휘해 대통령이 되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줄을 대어 일본인이 두고 떠난 적산을 불하받은 사람들이 신흥 자본가로 등장했다. 자발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력하며 살았던 군인, 경찰, 판검사, 교사, 공무원들이 그대로 남아 대한민국의 권력기관과 행정조직을 장악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를 . 처단함으로써 민족사의 정통성 세우려 했던 국회 반민특위는 친일파의 역습에 해산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있어야 할 자리를 독재와 반칙, 부정부패가 점령해버렸고, 헌법은 그저 이념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을 지배하지 못했다(pp. 61-62). 식민지에서 풀려나 만든 신생국가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 첫째는 역사적 대의명분이다. 신생 대한민국의 긴급과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해 민족사의 정통성을 세우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조국 광복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국가를 세우고 운영해야 한다. 둘째는 경제적 효율성이다. 민중을 빈곤에서 해방하고 물질적 삶을 개선해야 국민이 최소한의 기대를 품고 국가에 복종, 협력하게 된다. 셋째는 민주적 정당성이다. 헌법에 따라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주권재민 또는 인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해 정치적 정당성을 지닌 정부를 세워야 한다(p. 76).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이승만 대통령 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해산하고 국회에서 반민법을 폐지하고 한 명의 친일파도 처벌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자세히 기술한다. 이러한 친일파를 처단하고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대한민국의 약점이 되었다. 그리고 친일파 청산 문제는 반민특위 해산 이후 65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 덕분에 처벌을 모면한 친일반민족행위 용의자들은 대부분 천수를 누린 다음 자연사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결여한 채 출발한 이유와 과정을 엄정하게 평가하고 철학적으로 소화하는 것 뿐이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시민들과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 후손들의 명예훼손소송과 발행금지가처분소송, 심각한 재정난을 모두 이겨내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기까지 강만길, 백낙청, 윤경로, 염무용, 최병무 등 200여명의 역사학자와 지식인, 변화사, 종교인들이 편찬위원회에 참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11월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반민특위가 적용했던 것과 거의 같은 기준에 따라 선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4,776명의 이름과 직위, 활동내용을 수록했다. 4.19와 5.16 이후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부 이래 개발독재와 재벌 중심의 자본 축적,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낡은 경제구조를 혁신하지 못했으며,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른 정글법칙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0년의 진보정부는 ‘역사적 경로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경제는 70년대에 ‘이륙’을 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저 사실일 뿐이다. 우리 세대는 개발독재의 성공이 몰고 온 경제생활의 급진적 변화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 체험은 단편적이고 일면적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동네에 밥을 먹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탈지분유 몇 조각과 흑설탕을 종이봉투에 담아 이웃에 주는 것을 보았다. 흑설탕은 국산이었고 탈지분유는 원조물품이었다. 친구네 식구들이 국수를 삶아서 저녁을 먹는 중에 초가집 지붕이 내려앉아 크게 다친 일도 있었다(p. 105).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대한민국이 13억 달러를 수출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13억 달러는 오늘날 우리 기업들의 하루 수출액보다도 적다. 하지만 그 때가 10억 달러 수출이 대단한 국가적 경사였다. 학교 담벼락 전체가 수출실적과 경제성장률, 주요 수출품목을 보여주는 그래프와 숫자로 덮였다. 교장선생님께서 감격적인 정신훈화 말씀을 하셨다. 경제만큼은 보수정권이 잘한다? 국민경제를 비행기라고 생각하자. 4. 19와 5. 16이 연이어 일어난 1960년대 초 한국경제는 시동을 걸지 못한 비행기였다. 연료도 활주로도 없었다. ‘10월 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가 일어난 1972년 무렵, 비행기는 가속도를 붙이면서 활주로 위를 달렸다. 10. 26 사건이 난 1979년에는 바퀴가 땅을 차고 오른 것이라 보인다. 1980년대에 빠르게 상승했지만 아직은 저공비행이었다. 본격적으로 고도를 높인 시기는 민주화 이후인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였다. 그런데 1990년대의 가파른 상승은 1997년에 갑자기 끝이 났다. 비행기는 추락할 것처럼 곤두박질해 비행고도가 단숨에 반 토막이 났다. IMF 경제 위기였다. 1999년 반등한 한국 경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불안정하지만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 년 년의 하락은 . 2008 -2009 부동산대출 전문 금융회사들이 파산으로 시작된 미국발 국제금융위기와 환율관리 실패 때문이었다. 2010년 들어 난 기류를 극복하고 고도를 되찾았지만 예전과 같은 상승세는 회복하지 못했다(p. 112) 다른 건 몰라도 경제성장 만큼은 독재, 권위주의, 보수정권이 민주, 자유주의 진보정권보다 더 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실증적 근거가 없는 고정관념이다. 한국 경제는 박정희 때 이륙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의 상승폭은 민주화 이후 10여 년 동안이 그 이전보다 더 컸다. 1979-1980년의 불황과 1997년의 외환위기, 2008-2009년의 금융위기는 모두 보수정권이 일으켰다. 김대중 정부가 IMF경제위기를 수습한 이후부터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까지 진보정권 10년 동안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 시절과 비슷한 상승세를 기록했다. 미국발 국제금융위기가 수습된 이후인 2010-2013년의 상승세는 진보정권 때보다 더 나을게 없다. 결국 경제성장에 관한 한 보수와 진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잘했다고 판단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p. 113). 한국 경제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가치가 있는 사건은 두 가지다. 경제성장과 관련해서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2-1976)이며 소득분배와 관련해서는 IMF 경제위기. 우리나라는 다양한 소비재 경공업뿐만 아니라 철강, 자동차, 금속, 석유화학, 조선 등 전통적 중화학공업과 세계 최고 수준의 컴퓨터, 반도체, 이동통신기기 등 첨단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수출입을 합친 금액이 국내총생산과 맞먹을 정도로 무역의존도가 높다. 주요 산업을 거의 모두 소수의 재벌이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재벌 대기업과 수출 중심 경제구조의 원형이 바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에 탄생했다.